드디어 이 답사 수업도 끝이다.
레포트만 제출하면 이번 학기가 끝난다.
그냥 취직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은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이 지켜지지 않으므로 직장인이 훨씬 더 우수한 근무환경 같다. 뿐만 아니라
뭐,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면에서는 똑같지만.
BASF 오오 바스프... 미천한 본인을 구원하소서... 외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미세먼지 들이마셔서 지능이 낮아지는 끔찍한 일을 제가 당해야 합니까...대응방안도 없어요...
DHL과 숭례문. Dalsey Hillblom Lynn 의 약자로, german logistics company...
오오 독일 오오.
서소문은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에 있었던 작은 문이다.
한마디로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위치했다는 것.
wikipedia 등에서 검색할 때는 소의문(昭義門) 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도록 하자.
위치는 아래와 같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한양도성 밖의 외교와 상업 활동의 중심 공간이었다.
라고 한다.
허어.
지금은 역사시간이 아니므로 간단한 의문 정도는 품어도 된다.
아니, 이렇듯 사진과 그림 자료가 남아있는데, 서소문 밖 네거리가 한양도성 밖 외교의 중심공간이라고?
흠... 이해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다.
한양도성 밖의 상업의 중심지인데 왜 전부 초가집인가?
상업의 중심지이면 자본주의 맹아론에 의해 넘쳐나는 금전력으로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렇다.
칠패시장터. 서소문 근처에 시장터가 있었나 보다.
왔다.
이곳은 한때 공영주차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공영주차장이 한 구석에 위치한다.
서소문 밖 네거리 참형터는 국가의 공식 처형지이기도 했다.
사법 기관인 형조, 의금부와 가까워서 참형 집행에 편리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래서 1784년 천주교가 들어옴에 따라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을 당했다.
흠..
길 한가운데서 처형이라.
대혁명의 기요틴 급 광기같다.
현재 진행되는 전시는 불교와 관련한 전시이다.
2011년 7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정부, 서울시, 중구에 "서소문 역사공우너 순교성지 조성사업"을 제안해서 조성된 공원에 불교전시라. 그럴 수도 있지.
공(空) Sunyata 는 the voidness that constitutes ultimate reality
라고 한다. 완전한 현실을 이루는 비어있음.
흠. 어렵다.
단면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건축사 사무소 인터커드
보이드아키텍트 건축사 사무소
레스건축
이렇게 3군데의 합작이라고 한다.
근데 2곳은 친하고 1곳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 서소문 공원에서 유독 이질적인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
그거슨 바로 상설 전시실. 지하 3층에 위치한다. 뭐, 실제로 나는 잘 못 느꼈는데, 유독 상설 전시실 만이 곡선도 들어가고 뭔가 밝은 느낌이 난다고 한다더라. 다른 곳은 벽돌, 우둘투둘, 직선의 느낌이라고 한다더라.
아무튼 이곳은 건축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볼 수 있는 하늘공원이다.
길고, 어둡고, 지하에 위치한 서소문 공원에서 빠져나와 넓은 공간으로 나감으로써 한순간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라고 한다.
벽을 크고 높게 지은 것은 하늘만 보이게 하게끔인데, 실제로는 사진에서도 보이듯 건물들이 눈에 거슬린다.
비슷한 예로는 안도 타다오의 지중 미술관이 있겠다. 깜깜한 공간만 이어지다가 탁 트이는 느낌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실제로 미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건축으로서 일반인에게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공공건축은 사실 다양한 건축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기에 괴상한 모양으로 지어진다던지 뭔가 부족한 느낌으로 지어진다던지 한다더라.
그러나 이곳은 공공건축임에도 (미적감각의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카더라.
평소에는 미사를 집행하는 종교시설로, 행사 시에는 일반인이 출입하는 공간으로 변모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잘 다가가고 있다. 일반 종교시설이 보통 도시를 향해 세를 과시하는 형태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생각할 때 대비된다.
라고 한다.
흠.
아니 이 말, 들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경동교회, 서울중앙성원(이슬람 모스크)도 도시 한복판에 있잖아?
그러나 종교시설이 도시를 향해 위용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지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고
종교인 이외의 사람은 굳이 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서소문 역사공원은 차이점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상 공원도 조금 걸어보았다.
1925년, 바티칸의 시복식을 시작으로 순교자들이 성인과 복자로 인정받았다.
현재까지도 단일한 장소에서 최다 성인 및 복자를 배출한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라고 한다.
1984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고,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배를 드렸다고 한다.
바로 이곳, 순교자 현양탑에서.
이렇듯 전시공간은 지하로 배치했기에 본인같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이 일대를 그저 녹색지대로 인식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서소문 역사박물관은 사실 비판의 요소도 있다. 건축적인 요소보다는 사업의 취지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이다.
우선 첫째로 처형의 역사로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서소문 일대는 조선시대 외교와 상업활동의 중심 공간이기도 했는데 왜 이를 무시하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말도 안되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외교의 중심지는 중국(명,청)과의 연결고리를 맡은 어딘가 아니겠는가? 혹은 일본으로의 조선통신사 정도. 상업활동이라...
두 번째로는 천주교 평향적인 역사 해석이라는 점이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형이 집행된 장소였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의 굵직한 사건들이 펼쳐지기도 했던 곳에 오직 천주교만의 해석이 들어간 천주교의 성지를 건립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노 코멘트다. 내가 답변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다.
오늘의 감상
후후...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전혀 다르다.
오늘 몇가지 작품들을 감상하며 느겼던 것은
서양의 작품들은 정말 실사화에 치중했다는 것.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 시절에 20대에 완성한 조각작품 피에타는 옷주름의 깊이감, 얕은 팔자주름, 갈비뼈 등이 깊이감을 가지고 조각되어있다. 그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조각작품을 보니 굉장히 무례한 감상이기는 하나 밋밋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뿐만 아니다. 서양 코쟁이 양키 친구들은 원근법, 키아로스쿠로(명암 대비로 입체감 주기), 테네브리즘(조명 효과)등을 사용해서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그림은 초기와 후기에 큰 차이가 없음을 느꼈다. 뭐, 맥락은 대충 이해가 간다. 새로운 기법을 시도할 때마다 '무엄하도다', '어딜 감히'라는 말에 가로막혔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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