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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사회학

돈의문 박물관 마을 답사

시험을 5일 앞두고,

Job interview를 4일 앞두고,

새롭게 답사를 다녀왔다.

 

취준하고 있으니까 인터뷰, 레쥬메 작성은 꾸준히 하는 중이라서

이제 2달 차 되니까 별로 힘들지도 않다.

아무튼 이 수업 덕택에 강제로 서울 나들이를 하고 있으니 그래도 갑갑함을 덜어서 좋다.

 

 

뭔가 그럴듯한 사진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란 무엇인가

본래는 재개발하려 했지만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마을 전체가 보존된 곳이다.

그런데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거슨 바로 마을을 보존하기는 보존하되, 60년대, 70년대의 모습을 박제하지 않는 것.

 

dmvillage.info/sub/intro/story.php

 

돈의문박물관마을

 

www.dmvillage.info

흠.

그러니까 사람의 생활상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19세기의 생활상, 20세기의 생활상, 21세기의 생활상은 다르다.

이를 반영해 도시 역시 변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제하지 말고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내자.

뭐 이런 말 같다.

 

 

이 사진에 쓰여진 말이 굉장히 중요한 테마로 중요한 듯.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한옥 에리어, 전시 에리어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기오헌이 참여를 했고 서울시의 도시 재생의 사례이고

근처에는 역사박물관과 경찰박물관과 삼성 병원이 있어요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뭔가

'박제'가 아닌 방식으로 재생을 함으로써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모토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고 하기에는 사업 계획에 자주 변경이 주있기에 좋게 말하면 유연한 대처가 돋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근본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이 사진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양 도성 풀 코스 되시겠다.

돈의문은 인왕산 구간과 숭례문 구간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좌측에 있다.

이 구역의 길의 이름은 새문안길 인데, New gate road 정도이다. 한자로 끼워 맞추면 新門路(신문로)이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돈의문을 세웠는데

모종의 이유(풍수지리였나?)로 1413년에 허물고

1422년에 다시 새웠다고 한다.

New Gate가 새워져서 새문안 동네라고 불렀다 카더라.

 

지금은 경희궁 자이가 호갱노노에 의하면 17.2억을 호가한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역사와 현대의 부동산을 들먹이면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도대체 무엇을 보존했는 지를 모르겠다는 것.

과외 골목이었다는 점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건가?

식당 골목이었다는 점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건가?

복원할 정도로?

 

 

이것은 38번 건물부터 35번 건물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HP에 건물 이름이 나와있지 않다. 그냥 번호만 있음.

아무튼 하고자 하는 말은

뭔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고 나름의 성의를 담았다는 것만은 느껴졌다는 것이다.

VR을 이용해 돈의문의 옛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

근대 개화기 돈의문 구역에 전차가 다녔으므로, 전차를 테마로 한 전시관을 꾸미려는 시도

이렇게 느껴진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결실을 맺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면 뭔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그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부조화는 매우 이상한 일이다.

왜냐면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애초에 68채의 가옥 중에서 오직 20채만을 새로 지었기에

기존의 마을과 70%의 싱크로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30%만 변했음에도 주변환경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보였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8분 짜리 VR로 돈의문을 재현한 코너에서는 고증 오류가 발견되었다.

 

19세기 돈의문 일대의 사진이다.

설명란에는 초가집의 숫자가 기와집의 숫자를 압도한다.

그런데 VR 속에서는 돈의문 일대는 기와집 밖에 없다.

 

그리고 상권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흠...

돈의문이 세워진 것은 15세기이고,

15세기하면 서쪽에서는 르네상스다, 피렌체다 하던 시기이다.

Rosselli, Map of Florence, 15th-century

florenceforfree.wordpress.com/2012/12/20/traces-of-florence/

 

traces of florence

From an ancient Roman development to one of Fodor’s top European destinations, the city of Florence has donned many hats throughout the centuries. In a city teeming with so many titles how ca…

florenceforfree.wordpress.com

그리고

Viagem do Japao

 이게 16세기의 포르투갈의 무역지도이다.

뭐, 당시에 이미 말레이 해협이 중요한 해로로 부상했다는 것 정도는 딱 보이지 않는가?

en.wikipedia.org/wiki/Nanban_trade

 

Nanban trade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Period in Japanese history The Nanban trade (南蛮貿易, Nanban bōeki, "Southern barbarian trade") or Nanban trade period (南蛮貿易時代, Nanban bōeki jidai, "Southern barbari

en.wikipedia.org

15세기가 아니라서 필자 역시 고증 오류이기는 한데,

아무튼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조선의 그 어떠한 지역도 상권이 발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보기에 VR 영상을 보면서 반감이 일었다.

 

 

오늘의 답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만 개의 풍경, 만 개의 서울이라는 전시인데, 50년대부터 2010년대의 서울을 개략적으로 사진과 함께 정리한 곳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의 어느 곳이 도시재생 되었는가를 다룬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서랍을 이용한 음악재생 시스템으로,

위의 사진처럼 서랍을 열면 음악이 재생된다.

보이는가? SONY가 보존되어있다.

저게 그 유명한 sony walkman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소니는 간단히 말해 일본의 유명 8대 전자업체들 중 하나로,

2003년의 소니 쇼크(Sony Shock) 를 아시아 마켓에 불러올 정도로 다 망해가는 기업이었다만

현재는 소프트 웨어 50%, 하드 웨어 50% 정도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 다시금 세계 속의 소니로 나아가고 있다.

SW는 대표적으로 소니 뮤직, 소니 픽쳐스, 플스 되시겠다.

미국의 퍼니메이션(funnymation), 크런치롤(crunchroll)을 인수해 아메리카의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를 장악했다는 뉴스가 있다.

즉, 본인같은 씹뜨억들에게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회사인 것이다.

 

www.forbes.com/2003/11/05/cz_bf_1104sony.html?sh=4bca4ac53523

 

The Pride That Killed Sony

CEO Idei's focus on telecom and the Internet cost his company its lead in every other business line.

www.forbes.com

ㄴSony shock

 

asia.nikkei.com/Business/Business-deals/Sony-acquires-US-anime-streaming-service-Crunchyroll-for-1.175bn

 

Sony acquires US anime-streaming service Crunchyroll for $1.175bn

Deal with AT&T gives Japanese company access to 90m customers around the world

asia.nikkei.com

ㄴ애니메이션 서비스

 

이렇게 전자회로도 보존되어 있다.

 

 

아아 라떼는 말야

세운상가에서는 탱크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고

본인 역시 급식 시절에는 자주 들락날락거려서 여러가지 LED나 센서를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방문한 기억이 있는 세운상가는 윗 사진들 중 오른쪽이었다는 말.

당시에는 뭔가 미로같은 맛이 있었는데

지금 가보면 뭔가 현대스럽게 되어있어서 개인적으로 별로 안좋아한다.

 

무릇 전자상가라 함은 미로처럼 되어있어서

비밀기지도 숨겨져 있고

어둠의 세력의 지구 정복 계획이 진행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겨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지금 세운상가를 가보면 뭔가 서울의 공원스럽게 되었다.

뭔가, 배나온 아저씨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싫다.

결론은 커플과 인싸가 점령한 지금의 세운상가가 싫다는 것.

 

닌텐도도 있다.


오늘의 정리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아지오 라는 곳의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근대식 카페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한국은 70년대에도 심각한 경쟁사회였음을 뼈저리게 알게되었다.

 

돈의문 마을 총평

마을 재생에 대한 성의가 보였다.

그러나 아쉬웠다.

한옥 마을 구역과 60년대 마을 구역이 어울리지 않았다.

마을이 좁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을 내의 부조화 때문인지, 역사적 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전시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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